신앙의 베이직 - 사귐 (associate with, make friends)

사귐이란 ‘서로 가까이하여 얼굴을 익히고 사이좋게 지내는 일’, ‘교제함’이란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원어가 대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히브리어로는 첫째 ‘라아’(ראה)입니다. 이것은 ‘먹이다’, ‘…을 돌보다’ 로서, 여기에서 ‘친구가 되다’ (잠13:20, 28:7), ‘자신을 결합하다’, ‘관계를 맺다’ (잠22:24)는 의미로 발전하였습니다. 두 번 째로는 ‘아라브’ (ערב)입니다. 원래의 뜻은 ‘섞다’, ‘혼합하다’로서, 이것이 ‘자신을 섞다’, ‘어울려서 교제하다’ (시106:35, 잠 20:19)는 의미로 발전하였습니다. 


헬라어로는 먼저 ‘코이노네오’ (κοινωνω)가 있습니다. 이것은 ‘공동으로 가지다’, ‘참여하다’, ‘관심을 가지다’, ‘함께 물질을 나누다’로서, ‘교제하다’, ‘친교를 나누다’, ‘협조하다’, ‘밀접한 관계를 맺다’ (고전1:9, 갈2:9), ‘도움을 주다’, ‘동정하다’, ‘서로 나누어 주다’ (고후9:13, 히13:16), ‘교제의 표’, ‘선물’ (롬15:26, 고전10:16), ‘참여함’, ‘나눔’ (빌3:10) 등의 의미로 쓰입니다.


결국, 이 단어는 단순한 인간적 친교나 교제의 차원뿐 아니라 그것을 훨씬 넘어서 이웃을 긍휼히 여기며 가난한 자를 돕고 물질을 공유하는 구체적 사랑과 서로 간의 허물없는 교제 행위 까지를 포함합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성도 간의 참된 교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매체로 한 성도와 하나님 사이의 신령한 교제를 가리킵니다.(요일1:3). 두 번째로는 ‘콜라오’ (κολλάω)입니다.


이것은 ‘아교풀’을 뜻하는 ‘콜라’에서 파생된 말로서 ‘아교로 단단히 붙이거나 달라붙게 하다’, ‘밀착시키다 (눅10:11)는 뜻을 지니며, 은유적으로는 ‘더부살이를 하다’, ‘연합하다’ (눅15:15, 행5:13), ‘집착하다, ‘매달리다’ (롬12:9)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하나님과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의 사귐의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쉬나나미그뉘미’입니다. 이 단어는 ‘쉰’(함께)과 ‘아나미그뉘미’ (섞다, 혼합하다)라는 단어가 결합된 용어로, ‘함께 섞다’, ‘뒤섞다’, ‘…와 교제하다’, ‘연합하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즉, 깊은 나눔과 연합 및 어울려서 서로 사귐을 시사합니다.(고전5:9,11, 살후3:14).


성경에서는 몇 가지 형태의 사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과 성도의 사귐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입술의 고백뿐만 아니라 삶(행위)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말합니다.(요일1:6).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사귐입니다. 이 사귐은 인간의 노력과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인간에게 손을 내미심으로써 가능했습니다(고전1:9, 요일1:3). 셋째는 성령과 성도의 사귐 및 성령 안에서의 교제를 알려줍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이뤄지는 교제는 반드시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전13:13, 빌2:1). 왜냐하면 허물없이 서로를 감싸고 받아들이는 친교는 성령의 은사에 속하는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형제와 자매, 이웃 사이의 사귐입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은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이웃)들을 통하여 가능합니다(Westcott). 왜냐하면 형제(이웃)와의 사귐은 하나님과의 사귐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몬1:6, 요일1:7). 마지막은 이방인(원수)과의 사귐입니다. 인종과 계급, 빈부의 차이 등으로 인한 교제단절은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속되거나 무가치한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요4:9, 행10:28). 그리고 예수께서는 원수 같은 인생들을 받아 주셨으며, 또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5:43-48, 엡2:13-18).


무엇보다 진정한 사귐의 시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시작으로 가족과 목장식구, 이웃과의 깊은 사귐을 갖는 7월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성경문화배경사전 (생명의말씀사)

편집위원 최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