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의 아류들을 조심해라(4)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시인 고은의 <그 꽃>이라는 시가 최근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그 시만큼 오늘날의 삶을 잘 묘사한 시를 찾아보지 못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성공을 위해 달려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꽃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고 내리막길을 걸을 때 비로소 보인 것이다.

그 꽃이 올라갈 때도 엄연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인들은 꽃향기는 고사하고 꽃을 볼 여유가 없이 살아간다. 


▲ 최병락 담임목사

울산에 살고 있는 둘째 누님이 울산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50평의 넓은 아파트는 주상복합으로 되어있고, 31층에 위치한 누님의 집은 넓은 거실에 통유리가 되어있어 울산의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국을 방문해서 누님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려 한 모금 마시며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도시를 보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저 만치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과 태화강이 유유히 도시의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운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절로 와~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때 청소를 하고 있던 누님과 나누었던 짧은 대화는 잊을 수 없다. “와~ 누나, 전망이 정말 멋있다. 저 아래에 흘러가는 강을 보니 저절로 시인이 되는 것 같아.”


그때 누님이 하던 청소를 멈추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는 게 바빠서, 아직 한 번도 제대로 강을 본적이 없다."


물론, 누님이 그 곳으로 이사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방문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바쁜 현대인들의 삶을 누님의 그 짧은 말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내 눈에는 보이는 강이 누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이내 깨닫게 된 한 가지는 나는 여행객이었고 누님은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삶의 현장은 우리의 눈을 가리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들고, 오늘을 즐기지 못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긴장감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하지만, 여행객은 오늘이 중요하다. 오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누리고 음미하고 가슴에 담아야한다. 여행객에게는 모든 장면들이 소중하고, 놓치기 아까운 순간들이다. 그리고 집착이 없다. 여행자체가 주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 때에 영원히 살아갈 주거민처럼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이 땅을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를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11:13)"


우리 크리스천들은 매일 매일이 중요하다. 매일 매일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며 살려면 우리에게 이런 의도된 느림이 필요하다. 때로는 나그네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일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바쁜 일상이 앗아간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느림과 나태함은 반드시 구분되어져야한다. 많은 사람들은 느림을 나태함의 결과라고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반대적인 생각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태함을 느린 것으로 포장을 하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반에서 일등하는 학생이 문제집을 가지고 공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문제를 분석하고 풀면서 느리게 푸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빨리 빨리 여러 번 보는 학생이 있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 느리게 문제집을 보아도 꼼꼼하게 보는 학생이 있고 빨리 보는듯해도 반복해서 점검하는 학생이 있다. 


그런데 나태해서 느리게 문제집을 한학기가 다 흘러가는데도 끝마치지 못하는 그런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느림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꼼꼼히 챙기고 살피면서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신실함이 동반되는 결과여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나태해서 느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태함은 느림의 아류이다. 결코 하나님이 주신 성품이 아니다. 성경은 게으른 사람을 싫어한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25:26)”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를 권계하며...(살전5:14)”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주인이 올 때까지 한 달란트를 쥐고 있었던 것은 느린 것이 아니라 게으른 것이다. 주인은 느림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을 책망하고 있는 것임을 주지해야한다. 


목회를 하다보면 다양한 목회자들을 만나게 된다. 일전에 한국에서 만난 한 목사님의 고백은 은혜가 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성도들이 열 명 미만이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시다. 그분이 목회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본인이 깨달은 것을 이렇게 나누어 주었다. “내 힘으로 목회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성도들을 닥달하여 훈련시키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속에서 일하실 때까지 나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렇다. 목회에는 기다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하나님이 일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 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 은혜스러운 간증이 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목사님이 그 기다림의 기간을 나태함으로 보내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목회자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이고, 다른 일에 많이 바쁜 것을 보고 듣게 되었다. 그것은 기다림이 아니라 나태함이다. 


기다림이란 하나님이 일하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을 꼼꼼하면서 부지런하게 사명을 다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린다. 천천히 간다는 말로 포장한 나태함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절대로 조급한 마음을 품지 않으신다. 40년도 기다려 주시는 분이시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만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40년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이라면 40년이 아니라 4개월 만해도 충분히 모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만드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40년을 기다려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40년 동안 모세 안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하나님은 급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우리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이시며, 심지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와 보조를 맞추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한다. 부지런함의 아류, 나태함을 경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