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십자가 길에서 만난 은혜’

3월 29일부터 4월 2일까지 5번의 새벽 예배가 열렸습니다. 코로나로인해 많은 성도님들이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새벽 예배를 드렸지만 은혜만큼은 예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실시간으로 가정과 연결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고, 교구 별로 줌으로 접속해 함께 예배하여 함께 하는 예배를 만들었습니다. 은혜로웠던 특별새벽기도의 설교들을 소개합니다.


통곡의 자리에 예비된 은혜 (마26:69-75) 


▲ 김수용 목사

“여러분의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은 언제였습니까?” 저는 신학교를 지원할 때였습니다. 일평생동안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화난 모습에 저도 모르게 ‘교회에 안가겠다.’라고 말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너무 비참하고 수치스러움에 떨고 있던 그날 밤. 내 삶의 이유가 다 사라진 것 같은 밤이었습니다. 라는 고백에 청중은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어머니를 통해서 제게 주어진 노란 원서 봉투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허락이었습니다. 제가 수치와 분노로 가득했던 그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아버지의 마음을 녹이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부인하던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전부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전부였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했다는 단어가 늘 그에게 자랑이었고 자부심이었지만 지금은 그에게 통곡이 되었습니다.   [영상보기]


살려주시는 은혜 (마27:1-10)


▲ 이윤섭 목사

예수님이 끌려오셨습니다. 모함과 술수로 인해 예수님은 끌려오셨습니다. 새벽에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모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은 전날에 죽었다 다시 사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자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시간에 본문의 사람들은 악을 행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채워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참된 회개’로 살아나야 합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판 것을 뉘우친 것으로 보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가진 양심은 그 ‘의’가 이미 상실되었기 때문에 결국 남는 것은 나 자신 뿐입니다. 회개와 뉘우침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회개는 오직 죄를 해결해주시는 예수님에게 함으로 말미암아 해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영상보기]


십자가에서 주신 은혜(마27:11-26) 


▲ 홍지승 목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날카로운 채찍에 수없는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얼굴은 온통 핏빛이셨습니다. 골고다 언덕까지의 7-800미터를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온 몸이 고통을 느낍니다. 몸이 중력에 의해 쳐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손에 힘을 줄 때 마다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셨습니다. 그리고 정오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올 때에는 한 밤중인데도 밝음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에는 한 낮에도 어둠이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버림받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버려짐은 가장 큰 고통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적 고통보다 더 정신적 고통을 당하셨을 것입니다. 온 몸이 발가벗겨지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은 바로 하나님에게 버려진 고통이었습니다.


이 고통은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감당하심으로 우리에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이 임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이것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이 우리를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꾸어주실 수 있습니다. 고아된 우리가 아들이 되고, 죄인 되었던 우리가 의인이 됩니다.   [영상보기]


마태의 십자가 (마27:27-44)


▲ 서정호 목사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유대인 모두가 손가락질 하며,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했습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마태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그의 삶은 존재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태가 지나가면 다들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마태가 이러한 삶을 경험했기 때문에 고난 받는 예수님에 대한 묘사가 남다릅니다. 마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뱉는 것을 묘사한 유일한 저자입니다. 겪어본 사람만이 주목하게 되는 장면인 것입니다. 마태는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메시아가 나타나더라도 자신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 마태를 부르는 성경의 구절에는 늘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구절이 따라옵니다.


이후 마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난 뒤에 깨닫습니다. 그 십자가가 세리였던, 손가락질 받았던, 침 뱉음을 당해 마땅하던 자신을 대신해서 달리신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수치’였음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나의 수치를 대신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내가 어떠한 잘못을 하던지 그 사랑은 변함이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영상보기]


역설, 십자가의 은혜(마27:45-56) 


▲ 안성권 목사

역설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되고 부조리하지만,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표현을 의미합니다. 역설은 예수님은 가장 역설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이에게 새로운 생명이란 역설을 낳습니다. 


이 역설은 그러나 예견된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정한 것입니다. 그 증거로 오늘 본문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모두가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던 그때에 돌발적으로 신포도주를 가져와 예수님께 마시게 합니다. 이것은 시편의 예언을 이루게 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역설적인 죽음은 예정되어있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다 이루셨습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도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미 예언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도 이루어졌습니다.  [영상보기]



칠(七)인의 일곱(七) 말씀


7인의 사무라이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일본의 전국시대에 끊이지 않는 전쟁에 산적들이 횡포를 부리면서 백성들을 떨게 합니다. 이때에 나타난 7명의 사무라이들이 백성들에게 방어태세와 전투를 알려주어 승리하게 한다는 영화입니다. 영적 무장이 필요한 이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말씀인 가상칠언을 가지고 7명의 목사님이 강단위에 섰습니다. 어느 전쟁보다 치열했던 예수님의 십자가 전투, 그 현장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지난 4월 2일에 열린 금요성령집회에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는 옵니버스(omnibus) 형식으로 7명의 목사님이 강단에 연달아 올랐기 때문입니다. 7분은 각기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말씀을 한 가지씩 가지고 올랐습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이야기로 예수님의 십자가 위를 설교하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기의 설교를 마친 후에는 이에 따른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7명의 솔리스트들이 나와 주제에 맞는 찬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들을 되새기게 했습니다.



또한 기독교 영화 중 최고의 수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의 십자가 장면들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더욱 자세하고 깊게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전투로 인해 우리는 이미 승리한 줄을 믿습니다. 이미 승리하였기에 우리는 그 승리를 확인하고, 은혜로 충만해지기만 하면 됩니다. 코로나와 여러 주변의 환경이 우리의 은혜를 빼앗아 갈 때에 영적인 전투에 승리를 위한 7명의 목사님 말씀을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