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영민 목사민의 에스겔 개론(상)

에스겔서의 시대적 배경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겔 1:3). 


갈대아는 바벨론이다. 일반적으로 갈대아 땅은 바벨론 땅, 갈대아 인은 바벨론 사람을 말한다. 지금 에스겔은 갈대아 바벨론 땅에 포로가 되어 그발 강 가에 나간 것이다. 포로 신세인 에스겔이 강물을 바라보던 심정은 슬픔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 본문의 배경은 이렇다. 다윗이 왕이 된 지 40년 후 솔로몬이 대를 이어 왕이 되었고 다시 40년 후인 주전 930년에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지만, 강력한 세력 여로보암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따라서 북쪽에 왕국을 형성한 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차지했다. 나머지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는 남쪽에 유다 왕국을 형성했다.


북쪽 왕국인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과의 시내산 언약을 모두 어긴 대가로 심판을 받아 BC 721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때는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없어진 후이다. 뿐만 아니라 남왕국 유다도 역시 우상 숭배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김으로 인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멸망될 것을 앞두던 시기이다. 바벨론은 남 유다의 마지막 세 왕,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이 통치하던 약 18년 기간 동안 세 번이나 유다를 침공하였다.


여호야김이 왕이 될 당시 중동의 패권은 애굽 왕 바로느고에게 있었다. 그러던 주전 605년 중동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애굽 왕 바로느고와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여세를 몰아 유다까지 침공하고 여호야김 왕의 항복을 받았다. 이를 가리켜 바벨론의 제1차 침공이라고 말한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의 백성 중에서 아름답고 재주에 통달한 젊은이들을 뽑아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그리고 왕궁에서 왕의 산해진미를 먹이고 바벨론 언어와 학문을 가르쳤다. 유다의 유능한 청년들을 바벨론화 하는 정책을 펼친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었던 사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니엘과 세 친구이다.


유다의 여호야김 왕은 주전 605년부터 3년 동안 느부갓네살 왕에게 조공을 잘 바치다가 특별한 근거도 없이 바벨론에 대항하여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므로 여호야김 왕이 통치하던 11년은 유다에게 있어 아주 불안정한 시기였다. 4년은 애굽의 속국, 3년은 바벨론의 속국, 그리고 마지막 4년은 불안한 독립국이었기 때문이다. 주전 598년,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향한 제2차 침공을 감행했고 여호야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레미야 22:19에 예언한 대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그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단 세 달간 왕위를 유지 하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다. 이 때 에스겔 선지자도 다른 용사, 기술자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다음 왕으로 세워진 여호야긴의 삼촌 시드기야는 유다를 11년간 통치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를 옥에 가두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 그러면서 애굽과 동맹을 맺어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주전 587년 바벨론의 제3차 침공으로 예루살렘은 완전히 함락되었다.


에스겔 1:1에 기록된 ‘서른째 해’에 대해 대부분의 성서 주석가들은 에스겔의 나이를 말한다는 해석에 동의한다.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겔 1: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것이 느부갓네살의 제2차 침공이 있던 주전 598년이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으므로 에스겔은 주전 593년, 30세 나이에 그발 강 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요약할 수 있다. “스물일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겔 29:17). 포로가 된 지 5년 후 시작해 27년이 될 때까지 예언을 했으므로 에스겔이 적어도 22년 이상 선지자로 활약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 이후에 얼마나 더 살았고 또 예언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에스겔 8:1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바벨론에 살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집이 있었다는 것인데, 나중에 유대 땅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에도 백성의 98%가 바벨론에서 계속 산 것을 보면 바벨론은 포로가 되어서도 살기에는 괜찮은 땅이었던 것 같다. 같은 시대 예루살렘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가 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예레미야 29장이다. 편지에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고 적혀 있었다. 즉 포로 생활 70년 기한이 차야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니 거기서 집도 사고 결혼도 하면서 정착해 살라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실천했다. 


또한 유다의 장로들은 에스겔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이요, 하나님의 손이 임해 있는 선지자로서 존경했다. 에스겔 14:1-2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하지만 이는 단지 겉모습에 불과하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겔 33:31).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정리하면 에스겔은 최소 22년 동안 선지자로 활동했고, 집도 가지고 있었으며, 피상적이지만 장로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서 사역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